
AI 시대 인문학, ‘계산’하는 기계 너머 ‘판단’하는 인간으로
인류의 역사는 도구 발달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불과 바퀴에서 시작해 생성형 AI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도구는 언제나 인간의 한계를 확장해 왔다. 그러나 지능의 영역까지 침범한 AI의 등장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공포와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는 시대, 끝까지 자동화될 수 없는 인간다움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 답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오래된 학문인 ‘인문학’ 속에 숨어 있다.
‘계산’은 기계의 영역, ‘판단’은 인간의 숙명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확률적 최적값을 내놓는 ‘계산’의 명수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고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판단’은 오직 인간만의 영역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프로네시스(Phronesis, 실천적 지혜)’**라 불렀다. 상황에 맞춰 무엇이 옳고 그른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숙고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선거 컨설팅에 AI를 활용한다고 가정해 보자. AI는 유표심을 공략할 가장 자극적인 슬로건을 순식간에 뽑아낼 것이다. 그러나 그 슬로건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지, 혹은 시대의 정신을 담고 있는지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사유의 불능’은 곧 악으로 이어진다. 스스로 판단하기를 포기하고 알고리즘의 제안에만 의존하는 순간, 우리는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경험을 사유로 바꾸는 삶, ‘온고지신’의 힘
AI는 경험하지 않는다. 오직 학습할 뿐이다. 반면 인간은 몸소 겪은 사건을 내면의 언어로 갈무리하여 ‘사유’로 전환한다. 논어에 나오는 **‘온고지신(溫故지新)’**은 단순히 옛것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의 경험에서 미래를 꿰뚫는 통찰을 얻는 과정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매일 수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그것이 곧 지혜가 되지는 않는다. 경험이 사유로 치환되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흘러가는 잔상에 불과하다. 17세기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정보를 모으기만 하는 사람을 '개미'에, 자기 논리만 펼치는 사람을 '거미'에 비유하며, 정보를 섭취해 꿀을 만드는 '꿀벌'과 같은 태도를 강조했다. AI가 제공하는 지식의 파편들을 모아 나만의 철학적 체계로 빚어내는 ‘연금술’이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인간의 문해력이다.
인문학,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
흔히 인문학을 고리타분한 학문이라 치부하지만, 사실 인문학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축적해온 가장 오래된 ‘미래 전략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DNA에는 기술뿐만 아니라 인문학이 녹아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이 ‘어떻게(How)’를 해결한다면, 인문학은 ‘왜(Why)’를 묻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례로 최근 논란이 되는 AI 윤리 문제를 보자. 자율주행차의 사고 시 판단 기준이나 AI의 저작권 문제는 기술적인 해결책만으로 풀 수 없다. 정의란 무엇인지,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까지 보호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심사숙고(深思熟考)’하는 인문학적 소양 없이는 기술의 방향타를 잡을 수 없다. 인문학은 변하는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아내는 힘이며, 이는 거센 기술의 파도 속에서 인간을 지탱해 주는 닻과 같다.

다시, 인간의 길을 묻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괴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해 줄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더 치열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것, 고뇌하는 것, 책임지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가치를 믿는 것이다.
미래는 기술의 정교함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품격에 의해 결정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시작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는 데 있듯, AI 시대의 생존법 역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인문학적 성찰에서 시작된다. 도구가 완숙해지는 시대, 이제 우리는 비로소 도구 너머의 인간 심연을 탐구해야 한다. 그것이 AI라는 거대한 항해를 시작한 우리가 길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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