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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로봇

AI 빠른 도입보다 중요한 노동민주주의·사회적 대화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은 AI를 '많이' 쓰는 나라이지, '잘' 쓰는 나라는 아직 아니다. 

국내 기업의 생성형 AI 도입률은 61%에 이르지만, 실제 업무 프로세스와 의사결정 구조에 깊이 뿌리내린 '조직적 내재화' 비율은 6.7%에 그친다는 조사가 있다. 열 곳 중 여섯 곳이 도구를 들여놓았으나, 정작 일하는 방식을 바꾼 곳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 셈이다.

한국은 올 1월부터 시행된 AI기본법을 통해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포괄적 법제를 갖췄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AI 지수에서도 종합 5위, 역량 인프라와 정책 환경 부문 상위권에 올랐다. 법과 인프라라는 하드웨어는 선진국 수준이다.

그러나 OECD와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는 각기 현실의 다른 대목을 짚는다. 도입 속도는 세계적으로 선두권이지만, 노동자의 직무 전환과 생산성 향상을 뒷받침할 참여·교육·제도적 기반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국내 일자리의 38.8%가 AI 대체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대다수 기업의 AI 투자는 매출의 5% 이하에 머물고, 노동시장 전반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도 제한적이다. ‘법률 세계 2위, 도입 상위권, 그러나 실질적 효과와 대비는 물음표.’ 이것이 한국 AI 거버넌스의 현주소다.



솔로우의 역설과 ‘J 커브’가 던지는 경고

이 현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87년 로버트 솔로우는 사무실마다 컴퓨터가 보급되어도 생산성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역설을 지적했다. 에릭 브린욜프슨은 이를 ‘J 커브’로 설명했다. 신기술 도입 초기에는 조직 적응 비용 탓에 생산성이 정체되다가, 업무 절차와 구조가 완전히 재편된 뒤에야 곡선이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것이다. 과거 컴퓨터 자리에 지금 AI가 들어섰을 뿐, 같은 곡선이 반복되고 있다.

컨설팅 보고서에 따르면 AI로 보강된 직무의 생산성은 37% 올랐고, 적극 활용하는 개인의 성과는 최대 5배까지 뛴다. 그러나 개인과 직무 단위의 성과가 기업 전체의 손익과 사회적 부가가치로 연결되는 다리는 놓이지 않았다.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구매하는 일과 조직 전체를 혁신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도입률이라는 숫자의 착시를 넘어서

AI 도입률은 정부 홍보나 기업 실적 발표에 쓰기 좋은 숫자다. 하지만 그 숫자는 결재 단계가 줄었는지, 보고서 작성 시간이 단축되었는지, 새로운 시도를 포용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는지를 전혀 일러주지 못한다.

같은 도구를 쥐여줘도 한 조직은 단순 문서 요약에 그치고, 다른 조직은 업무 흐름과 역할 분담을 통째로 재설계한다. 그 차이는 기술 성능이 아니라 권한 위임, 결재 절차, 평가 방식에서 갈린다. 우리가 점검해야 할 지표는 '도입 기업 수'가 아니라 '단축된 의사결정 단계'와 '새롭게 재설계된 직무의 질'이다.

기술의 속도보다 중요한 ‘노동 민주주의’와 사회적 대화

AI는 인구 감소와 노동력 부족을 겪는 한국에 유력한 돌파구다. 그러나 기술을 서둘러 들여오는 것보다 중요한 과제는, 현장 노동자가 변화에 적응하도록 돕는 교육, 노사 협의, 사회안전망의 재정비다.

연구에 따르면 AI 도입 과정에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사업장일수록 구성원들의 수용성과 적응력이 높았다. 반면 일방적인 하향식 도입은 불신과 저항만 부른다. 노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상시 협의체를 만들고, 재교육과 직무 전환 배치에 자원을 우선 배분해야 한다. 특히 대응 여력이 취약한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배제되지 않도록 촘촘한 안전판을 짜야 한다.

도입을 누가 결정하고, 현장 노동자가 발언권을 가지며, 생산성 향상의 과실과 위험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묻는 ‘AI 시대의 노동 민주주의’가 반드시 작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AI는 양극화를 해소하기는커녕 노동시장 격차를 더 벌려놓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속도가 아닌 방향, 사람과 조직의 전환으로

기술의 역사는 언제나 명확한 교훈을 준다. 증기기관이 세상을 바꾼 것은 기계 자체의 힘이 아니라 공장제 수공업이라는 새로운 생산 구조가 결합했기 때문이며, 전기가 혁신을 낳은 것은 작업장의 동선과 조직이 전기에 맞게 재편된 뒤였다.

지금 정부와 기업이 던져야 할 핵심 질문은 명확하다. 'AI를 얼마나 더 빨리, 많이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일터의 의사결정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그 변화에 사람을 어떻게 주체로 참여시킬 것인가'다.

이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도입률 지표가 아무리 치솟아도 한국은 '많이 쓰는 나라'라는 한계에 갇히게 된다. 기술을 '많이' 쓰는 나라에서 '잘' 쓰는 나라로 도약하는 열쇠는 더 빠른 알고리즘에 있지 않다. 유연한 조직 구조, 성숙한 사회적 대화,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황도건 넥스라이즈 AI로봇교육원 대표 (민들레뉴스 '26. 9. 3)